깔끔한 이미지를 자랑하는 정훈씨(29·학원강사). 그의 깨끗한 이미지는 피부에서 비롯한다. 점이나 잡티는 찾아보기 힘들고, 얼굴은 뽀얗기가 여자를 능가한다. 비결이 뭘까? 바로 ‘화장’ 때문이다. 그는 스킨·로션은 기본이고, 모공을 축소하는 에센스며 주름을 제거하는 아이크림에 컬러 로션까지 6~7개의 화장품을 골고루 갖춰 쓰고 있다.

“술·담배를 많이 해서인지 20대 중반쯤 되자 피부가 칙칙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깔끔한 인상이 ‘트레이드마크’인데, 하루 아침에 피부가 망가질 수도 있겠다 싶어서 피부관리를 시작했지요”

정씨의 피부관리는 철저하다. 쌀뜨물로 세안을 하고, 일주일에 한차례 피부과에서 정기적인 스킨케어를 받는다. 스크럽 젤을 이용해 모공의 노폐물과 각질을 제거해주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스트레스로 여드름이 심할 때는 바나나를 이용해 천연 팩을 만들어 쓰기도 한다. 외출시에는 반드시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얼굴의 잡티를 가리기 위해서 컬러 로션을 바른다.

화장하는 남자가 늘고 있다. 근육질의 터프가이 시대가 가고 부드럽고 아름다운 남자를 선호하는 ‘꽃미남’ 전성시대가 도래하면서 생긴 변화다. 면도 후 스킨로션이나 향수를 바르는 것이 ‘최선의 멋’이라고 생각하던 남자들이 생각을 바꾸었다. 피부관리를 위해 서슴없이 백화점 화장품 매장을 찾고, 피부 관리실에 회원 등록을 한다. 진한 화장은 아니더라도 가벼운 컬러 로션으로 피부색을 보정한 남자, 눈썹을 깨끗하게 정리한 남자를 만나는 것은 이미 특별한 ‘사건’은 아니다.

화장품에 대한 남다른 관심 덕분에 ‘화장품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조동섭씨(36·프리랜서)는 “최근 남자들의 예쁜 외모가 연애·취업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번지면서 피부관리와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놀랄 정도로 높다”고 말했다. 조씨의 홈페이지(user.chol.com/~yonidong)에 마련된 남성 화장 상담코너에는 ‘피부에 따른 세안제’에 대한 문의부터 ‘색조화장 후 번들거리는 피부 관리법’ 등에 대한 질문이 올라와 화장품에 대한 남성들의 관심을 대변하고 있다. ‘화장하는 남자들’이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인터넷 카페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다음 카페만 대여섯 개가 있는데, 천연 팩을 만들어 쓰는 방법·화장품 사용 후기 등이 자세하게 올라와 있다.

정훈씨는 “과거에는 화장하는 남자에 대해 ‘유별나다’는 반응이 주류였으나, 최근에는 기능성 화장품을 생일선물로 사달라고 적극 요구하는 친구들이 많아졌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피부관리를 위해 매달 15만~20만원을 기꺼이 지불하는 회사원 최진택씨(32)는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 많아지면서 남자들도 이미지 관리에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피부관리와 화장을 자기관리의 일부분으로 느끼는 남자들이 많아지면서 남성전용 화장품 시장은 놀랄 정도로 늘어났다. 뉴코아백화점은 이달 10일까지 남성용 화장품의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5% 성장했으며 전체 화장품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9%에서 20%까지 커졌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태평양·LG생활건강에서는 앞다퉈 고급 남성전용 화장품을 선보이고 있다. 컬러로션·파우더·미백·피지조절크림·모공관리 세럼·아이크림 등 종류가 여성 화장품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남성전용 피부관리실이나 피부과도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CNP 차앤박피부과 박연호 원장은 “최근에는 피부염 같은 치료보다는 피부 스케일링을 위해서 방문하는 남성들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백화점 문화센터에는 ‘센스있는 남자를 위한 이색 메이크업 제안’이라는 이색 강좌까지 생겨났다.

‘여성의 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의 저자 최재천 서울대 교수는 그의 책에서 “화장은 남성이 해방됐다는 근거”라고 설명했다. 남아선호 사상이 자초한 남성 포화 상황에서 여성의 시대가 도래했고, 화장은 소수 여성에게 간택받기 위해 남자들이 벌이는 생존의 몸부림이라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시대는 바뀌었다. ‘남자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대접받지 못한 ‘예쁜 남자’들이 새로운 미의 기준을 만들고 있다.

지하철에서 마스카라와 립스틱을 꺼내들고, 길거리에서 분갑을 들고 파우더로 얼굴을 톡톡 치는 남성을 보게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부리부리한 눈매와 단단한 어깨근육을 자랑하는 ‘마초’들. 이제 그들도 변신을 서두를 때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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